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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alloween Terror
할로윈을 맞아 동네가 요란했다. 아이들이 분장을 한 채 바구니를 들고 뛰어다니며 집집마다 문을 두드렸고 그것은 파리하의 집 또한 마찬가지였다. 벌써 사탕을 여섯 번째 바구니에 쏟아주며 양치질은 빼먹지 말고 꼭 하라는, 앙겔라가 흔히 할 법한 말도 덧붙였다. 감사합니다! 인사와 함께 다음 수거지로 향해 총총 뛰어가는 뒷모습을 보던 파리하가 아이들의 지치지 않는 활력에 짓눌렸던 숨을 내쉬다가, 다음으로 시야에 들어오는 사람을 확인하고는 작은 몸집들에 맞춰주기 위해 숙였던 허리를 폈다.
" 파리하. "
" 오셨습니까? "
그러면 제 연인인 앙겔라의 얼굴이 시야에 함뿍 들어온다. 보고 싶었어요. 그 말과 함께 끌어안는 작은 몸을 같이 끌어안아 준 뒤 함께 집 안으로 들어서면 이미 파리하가 준비해놓은 근사한 파티용품들이 둘을 맞이했다. 작년에 한 것처럼 장난감 안경을 쓰고 어리숙하게 마녀의 망토를 흉내 낸 어린이용 망토도 걸쳐본다. 호박 그림과 거미줄이 그려져 있는 고깔모자도 쓴 채로 샴페인을 따르고 미리 구워놓은 호박 모양의 쿠키와 생크림도 곁들였다. 둘 은 단 하루뿐이지만 시선에, 현실에 구애받지 않는 유일한 날을 그렇게 즐기곤 했다. 차마 이것까진 구울 시간도, 아직은 기술도 없다며 머쓱한 얼굴로 연인이 가장 좋아하던 베이커리점에서 사 온 케이크를 꺼내 드는 파리하를 보며 웃음 짓던 앙겔라가 케이크 위에 장식된 호박 머리 모양의 초콜렛을 집어 파리하의 입에 쏙 넣어주었다.
" 이제 쿠키도 잘 굽네요. 처음에는 태우거나 모양이 어그러져서 호박 머리가 엉망이 되 고는 했는데. "
" 당신이 곁에서 도와주지 않으셨습니까. 또… 완벽한 쿠키를 원하시기도 했고요. "
파리하가 처음 구워본 쿠키는 엉망이었다. 특별한 스킬이 필요치 않은 동그란 버터 쿠키 조차도 양쪽 면을 전부 태웠고 한쪽 면이 괜찮아질 때는 반대쪽 면을 태웠다. 어느 날은 겉만 바싹 구워지고, 안은 날것의 모습일 때도 있었다. 또 아이싱은 어떤가. 부드럽고 몰랑한 것들은 일생의 절반 이상을 무겁고 딱딱한 것만 쥐어봤을 군인의 손을 버티지 못해 번번이 쥐여 짜이고 무너졌다. 뭉텅뭉텅 흘러나오는 크림들은 늘 날카롭고 각진 사람을 제 속성으로 끌어들여 흐물거리게 만들었다. 당황하며 도움을 청하는 눈빛으로 쿠키와 자신을 번갈아보는 파리하를 마주하던 날 앙겔라는 얼마나 오랫동안 웃음을 터뜨렸던가.
" 내 소원을 들어준 거네요? "
" 물론입니다. 누구의 소원인데요. "
" 그러면 다음번에는 케이크를 구워줄래요? "
" 알겠습니다. "
" 그다음 번에는 초콜렛으로 작은 트리 장식을 만들어서 얹어줘요. "
" 기꺼이요. "
" 그리고 그다음에는… 뭐가 좋을까……. "
" 앙겔라의 얼굴을 만들어볼까요. "
그건 싫어요. 앙겔라의 단호한 대답에 파리하는 뭐 어떻냐는 듯이 어깨를 으쓱였다. 싫다니까요! 장난스러운 외침과 함께 케이크에 있는 생크림을 손가락으로 퍼 올린 앙겔라가 상대의 볼에 그것을 얹었다. 앙겔라! 작은 탄식 소리. 곧 뒤엉키는 웃음소리, 작은 소란스러움이 집안에 울린다. 양쪽 다 얼굴에 생크림 범벅이 된 채로 소파에 드러누우면 나중에 청소는 어떡할 거냐는 질문을 하는 앙겔라를 품에 꽉 끌어안은 파리하가 이마에 입을 맞추며 대답했다.
" 오늘은 특별한 날이니까 뒷이야기 같은 건 신경 쓰고 싶지 않아요. "
" 매년 찾아오는 날인데도요? "
" 매년 찾아오는 우리의 기념일은 늘 특별했잖아요. "
돌아온 대답에 훌륭하다는 점수를 담아 볼에 입을 맞추면 속절없이 바스러지는 차가움이 앙겔라의 볼에도 맞닿았다. 그대로 고개를 돌려 낼름 핥아 올리면 그대로 멈추는 동시에 몸을 껴안고 있는 팔에 힘이 들어간다. 반응이 즐거워 키득키득 웃은 앙겔라가 좀 더 꼼꼼하게 볼을 핥았다. 있는 맛이라고는 잔뜩 다디달 뿐인 설탕 덩어리들이 입안에서 속절없이 녹아내렸다. 볼에서 콧등으로, 콧등을 타고 올라가 이마로, 그리고 자연스럽게 올라타지는 몸을 따라 감기는 양 눈두덩이에 입술을 내리다 상대가 움직이는 탓에 입술이 맞닿을라치면 망설이지 않고 몸을 일으킨다.
" 해주세요. "
" 싫다면요? "
" 앙겔라. "
" 언제까지 조를 거예요. "
" 앙겔라. "
" 한두 번도 아니고 다 큰 사람이…….. "
언제까지 이렇게 살 거예요.
그 말에 파리하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곧고 바름직한 길로만 걸어가며 뒷사람들을 인도할것 같은 이의 강단 있는 이목구비가 차례로 무너진다. 눈썹이 처지고 눈가가 일그러지며 입술은 치아에 물려 주름 하나 없이 빳빳해진다. 울음을 참는 아이의 모양새 그대로 변해버린 얼굴에도 앙겔라는 파리하의 위에서 건조하게 내려다볼 뿐이었다. 이러면 좀 괜찮아져요? 그 말이 흘러내려 파리하의 일그러진 눈가에 뚝 떨어졌다.
싫어요. "
" 파리하. "
" 하지 마세요. "
" 그만 좀 해요. "
" 저는 못 해요. "
" 해야 해요. "
매년 이날 하루만을 위해 사는 건 옳지 않아요. 고작 이 몇 시간을 위해 다른 것을 전부 제쳐두고 살았을 적의 부탁들을 생각나는 대로 해나가도 나는 돌아오지 않고요. 장교까지한 사람의 판단력은 이렇게 빈약하지 않잖아요. 이렇게 살면서 내가 원하는 것들을 차례대로 들어주어도 나는 기쁘지 않아요.
돌아오는 대답이라고는 울음소리뿐이다. 소리조차 함부로 내지 못하고 울렁거리며 목울대를 한껏 뒤엎는 흐느낌은 미미하나 날카롭고 절박했다. 이런 말을 하는 자신조차 여전히 그대로여서 우는 모습 한 번에 단단하게 뱉으려던 말들이 녹아내려 몸 밖으로 흘러내린다. 하……. 차오르는 감정들이 성대를 때리고 뒷목을 찔러 머리까지 지끈거리게 만들었다. 아팠다. 자신의 말에 금세 아이로 변해 울어버리는 이 사람을 어떻게 해야 하나. 우리가 어쩌다 이리되었나. 누구보다 강인하던 당신은 어쩌다 사람 하나와의 이별에 속절없이 무너져내렸나. 앙겔라는 파리하의 볼을 문지르며 울음이 멎길 기다렸다. 유령은 분명 온도를 느낄 수 없을진대 손아귀에 닿는 축축함은 기억 속에서 온도를 이끌어내는 것이 뜨거워 데일 것 만 같다.
" 파리하. "
" ……. "
" 파리하. "
" …네. "
내년에는 케이크를 구워주세요. 아까 했던 부탁이었다. 아주 단정하고 깔끔하게요. 생크림이 조금도 뭉친 곳이 없게, 눈이 쌓인 것처럼 아주 매끄러운 표면을요. 그리고 그다음 해에는 당근을 넣은 시트를 깔아서 당근 케이크를 부탁할게요. 작은 당근 쿠키를 단정하게 얹어주세요. 여전히 저를 보지 못하는 얼굴이 주억였다.
그리고 그다음에는 블루베리 케이크와 함께 아이들에게 나누어줄 과자를요. "
또 한 번 주억인다.
" 작은 트리 장식도 만들 수 있게 될 즈음엔 시간은 그만큼 벌어져 있을 거예요. "
그렇게 깨끗하고 깔끔한 케이크를 구울 수 있을 때까지 당신의 마음은 같이 굽고 또 구워지겠죠. 그 순간을 기다릴게요. 한 해, 한 해. 망자의 시간은 고여 할로윈의 하루가 지나고 눈을 뜨면 또 할로윈이겠지만 파리하는 그 외의 시간 또한 살 것이다. 다음 날에는 생크림 케이크가, 다음 날에는 당근 케이크가, 그다음 날에는 트리 모양의 장식이 올라가 있겠지. 그것을 익히는 동안 당신의 마음이 많이 삭고 또 많이 낡아 있기를 바란다. 연이어지는 오븐의 온도에 들어간 마음이 버석거리며 공기 중으로 날아가게 되기를, 나 외에 다른 것에 마음을 쏟을 줄 알게 되기를 바라.
" 내 얼굴은 만들지 말아요. "
그렇게까지 나를 상기하지 않겠다고 약속해요. 단단하고 커다란 양손은 여전히 제 주인의 얼굴에서 떨어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약속해줘요. 만들지 않겠다고. 어르고 달래는 조곤거림에 또 고개가 주억인다. 그제야 만족스럽다는 얼굴로 앙겔라가 같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파리하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 오늘 파티는 고마웠어요. "
" …앙겔라? "
" 내가 자고 일어나면 또 할로윈이겠죠. "
" 가지 마세요. 가지 마세요, 앙겔라. "
" 그때는 이 집에 내 물건이 줄어있기를 바라요. 이사를 간 상황이어도 좋구요. "
제발 저를 두고 가지 마세요. 앙겔라는 애닳음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케이크 기대할게요. 그 말이 들려옴과 동시에 파리하는 손을 뻗었지만 그곳에 더 남아있는 것이라고는 열 두시를 알리는 종소리뿐이었다. 파티를 벌인 모양새의 폭죽들과 리본들의 잔해들과 함께 파리하는 다시 하루를 맞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