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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식의 날
지난가을의 끝자락, 앙겔라 치글러는 겐지를 주웠다. 주웠다는 건 단순한 비유가 아니다. 산책을 겸하여 명계를 걷던 도중 하데스의 강으로 향하는 망자의 행렬에서 살아있다기엔 너무 희미하고 죽었다기엔 선명한 영혼을 건져 올렸으니, 실로 적합한 표현이 아닐 수 없었다. 물론 치글러가 그러한 영혼을 보는 건 처음이 아니었다. 명계에는 때때로 모호한 영혼들이 출몰하기 마련이다. 현생에서 코마와 같은 의식불명에 빠진 이들이 특히 그랬다. 그녀는 종종 변덕을 부려 색이 짙은 영혼들을 현생으로 돌려보내어 되살리는 ‘기적’을 행하곤 하였으나, 현실적으로 그 모두를 돕는 건 불가능하기에 대개의 영혼은 명계의 다섯 강물에 실려 떠내려갔다. 즉, 죽음에 이르렀다는 뜻이다. 치글러가 겐지를 발견하지 못했다면 그 역시 필히 그런 운명이었을 것이다.
치글러가 막 레테의 강물에 발을 디딘 겐지의 영혼을 건져내어 면밀히 살펴보았을 때, 그것은 묘한 녹음의 빛을 띠고 있었다. 신기한 듯 요리조리 돌리자 그의 영혼이 짜증스럽게 부르르 떨렸지만, 큰 효력을 발휘하지 못하자 금세 포기했다. 물론 앙겔라 치글러가 시마다 겐지의 근원을 찾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그에게서 희미한 용의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오늘날에 이르러 용의 대를 잇는 가문은 그녀가 알고 있는 한 시마다 가문 하나밖에 남지 않았다. 그리 돌려주려 했다. 그러나 조각조각난 겐지의 신체는 결코 어디에서도 찾을 수 없었고,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게된 겐지의 영혼만 허공에 붕 뜬 셈이 되었다. 치글러는 인간사가 본디 잔혹하다는 걸 알고 있었다. 그러니 이런 문제가 신계에 회부해야 할 일은 아니었다. 그녀는 무언가가 잘못되었다는 걸 느꼈지만, 이제 와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았다. 치글러는 한차례 고민에 빠졌다. 자신의 손을 탄 영혼을 명계로 돌려보냈다간 하데스가 크게 노할지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의 성정이라면 앞으로 치글러가 명계에 얼씬도 못 하게끔 출입금지 조치를 하고도 남았다. 치글러의 선택지는 별로 남지 않았다. 그래서 그녀는 가장 단순하면서도, 신의 눈을 피하기 쉬운 방법을 택했다. 시마다 겐지를 자신의 사역마로 만든 것이다. 겐지의 형상은 고대 용의 형태를 따 만들었으나, 그 크기가 작아 외양이 화려한 뱀처럼 보이기도 했다. 조금만 짧았더라면 해마를 닮았을지도 모르는 일이다. 그러나 치글러의 세심한 손길로, 그는 명실상부 용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앙겔라 치글러의 인생은 인간과 비하기엔 길고, 신에 견주기엔 너무도 짧은 생이었지만, 그럼에도 그 길지도, 짧지도 않은 생에 사역마를 두는 건 처음이었다. 물론 그녀의 신변을 돌봐주는 정령을 여럿 있었다. 그러나 그들은 자아를 가지고 있지 않아 그저 할 일을 행하는 도구와 같은 존재였다. 눈 뜨자마자 자신에게 이를 드러내는 피조물은 처음 봐, 치글러는 저도 모르게 헛웃음을 지었다. 겐지는 첫 강물에 발을 디딘 연유로 감정과 기억의 일부가 소실되었다. 흔히들 주마등이라 불리는 현상은 아주 어릴 적 기억부터 최근까지를 회상한다 했지만, 실은 그렇지 않았다. 명계에 들어선 영혼은 마치 겹겹이 쌓인 파이 껍질이 벗겨지듯, 오랜 시간 나이테처럼 쌓인 감정과 기억이 한 꺼풀씩 조각조각 떨어져 내렸다. 그리하여 시마다 겐지는 자신이 어떻게 죽었는지 기억하지 못했다. 치글러는 그저 더 날뛰는 사역마를 들이지 않게 되어 다행이라 여겼다.
앙겔라 치글러와 시마다 겐지는 시간을 켜켜이 쌓았다. 일 년 채 되지 않는 기간은 언제나 그렇듯 순식간에 지나갔지만, 두 사람이 얹어나간 시간은 그리 허망하지도, 의미 없지도 않은 것들이었다. 겐지는 때때로 찾아오는 옛 기억에 신경질적으로 굴기도 했고 심지어 도망치려는 시도도 있었지만, 어느 날부터인가 밤이면 치글러의 곁에 와 잠들었다. 치글러는 그 순간을 영원히 잊지 못할 것만 같았다. 이래서 인간들이 반려동물을 키우는 건가 봐. 그런 생각을 했다는 사실은 영영 비밀이었다. 그렇게 계절이 세 번 바뀌었다.
그날은 할로윈 전야였다. 명계는 예년과 같이 바빴다. 죽은 자의 영혼은 명계의 다섯 강물을 지나며 살아생전 가졌던 모든 것을 씻어내어 새로운 육체로 다시 태어나지만, 가끔 어떤 감정들은 영혼에 새겨져 잊히지 않는 법이다. 하데스는 약 일 년간 이들을 품고 있다가, 딱 하루, 현생에서는 할로윈이라 부르는 죽은 자들의 날에 잠시 이승으로 돌려보내어 묵은 감정을 해소하게 하였다. 그러고도 사라지지 않는 아픔을 가진 이들은 명계로 거둬져 그의 손과 발이 되기도 했다. 하데스가 인간에게 주는 작은 위안의 시간인 셈이었다. 비록 머나먼 과거에 인간에게 직접 해를 끼친 영혼들이 있어 할로윈이라는 이름 아래 의미가 변질되기는 했지만, 하데스는 적절한 조치를 취했을 뿐 그 자체를 없던 일로 하지는 않았다. 치글러는 전통을 존중했다. 자신의 사역마를 데리고 하나무라로 훌쩍 떠난 건 그 때문이었다.
치글러와 겐지는 투명화 마법을 입은 채 머나먼 발치에서 그가 살던 성채를 바라보았다. 겐지는 무덤덤해 보였다. 굳이 자신을 이곳에 데려온 것에 원망하지도 않았지만, 그렇다고 감사하지도 않았다. 그는 단지 묵묵히 어릴 적 놀던 거리를 걸을 뿐이었다. 분위기는 마치 축제처럼 떠들썩했지 만, 두 사람을 둘러싼 공기만은 무채색이었다. 치글러는 조용히 겐지의 뒤를 따랐다. 그렇게 한참을 걷다 주변이 조용해졌을 무렵, 그러니까 두 사람이 시마다 가문의 가장 안쪽으로 발을 디뎠을 때에서야 겐지는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저기 나를 죽인 자가 있습니다.”
겐지는 생전 자신의 형이었던 시마다 한조를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검은 상복을 입고 긴 머리를 하나로 묶어 늘어뜨린 채 정갈히 무릎을 꿇고있는 한조의 모습은 그의 앞에 놓인 두 자루의 검만큼이나 고독해 보였다. 그중 하나는 겐지를 닮은 녹음을 띠고 있었다. 그는 도대체 무엇을 추모한단 말인가. 동생을 죽인 일을 후회하기라도 하는 걸까. 겐지와 치글러는 알 수 없는 일이었다. 치글러는 챙이 긴 모자를 조금 더 깊게 눌러썼다.
“그를 죽이고 싶나요?”
살생은 엄연히 말해서 금지된 행위는 아니었다. 다만 치글러가 도의적으로 행하지 않을 뿐이다. 예전에는 많은 마녀가 악독한 일을 벌이기도 하였다지만, 그녀는 이제 현계에 남은 유일한 마녀였다. 인간사에 관여하는 건 명계에 잘못 발을 디딘 영혼을 돌려 보내주는 정도로 충분했다. 그럼에도 치글러는 그녀의 사역마가 원하면 얼마든지 들어줄 수 있는 종류의 부탁이었다.
“아니오. 저는 그가 오래 살았으면 좋겠습니다.
겐지는 치글러의 쪽을 돌아보지 않았다. 그는 아주 오랫동안 한조의 뒷모습을 바라본 채였다.
“살아남아 오랫동안 후회하고 고통받기를 바랍니다.”
“그리 될 거예요.”
치글러의 말이 예언처럼 휘몰아쳤다. 시마다 한조는 그리될 것이다. 치글러가 본래 겐지가 살았어야 할 만큼의 몫을 한조에게 주었으므로. 금기는 행하지 않았다.
돌아가는 길에 치글러는 아주 자그마한 겐지의 손을 붙잡았다. 까끌까끌한 비늘과 길게 솟아난 발톱이 그녀의 손바닥 안을 파고들었지만, 치글러는 개의치 않았다. 겐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다만 치글러의 손길을 거부하는 일도 없었다. 사역마로서의 충성심과는 다른 결의 감정이 그의 영혼에 덧씌워졌다. 그 감정이 명명되기까지는 아주 오랜 시간이 걸리겠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그들에겐 아주 많은 시간이 남아있었다. 앞으로 더 많은 시간과 기억이 새로이 쌓일 것이다. 그거면 충분했다. 치글러와 겐지는 명계로 돌아가는 기나긴 망자의 행렬에 합류하여 마치 산책하듯 그 길을 거닐었다. 집으로 가려면 조금 돌아서 가야만 했지만 둘은 상관하지 않았다. 겐지의 존재가 드러나도 상관없었다. 오늘이라면 하데스도 그녀의 반항을 잠시 눈감아줄 터였다. 흙은 흙으로, 재는 재로. 치글러는 오늘 하루가 모두에게 작은 안식과 위안을 주었기를, 간절히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