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Over the fairy tale
미녀와 야수
- 쿡히 @MimosaCookie
언제부터 있었는지 모르지만, 마을에는 소문이 하나 있었다. 바로 언덕 너머에 있는 성에 한 번 들어가면 나올 수 없다는 소문. 성주의 성이라고는 하나 그 얼굴을 본 사람이 아무도 없고, 그곳에서 일하는 사람조차도 본 적이 없다는 유령의 성은 모두를 두렵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특히 어린 여성들은 한번 끌려가면 괴물 성주에게 잡아먹힌다는 소문도 함께 돌았기 때문에 밤에는 모두 성으로 향하는 숲으로는 얼씬도 하지않았다. 하지만 단 한 명, 괴짜라고 소문난 앙겔라 치글러는 밤에도 숲에 들어가곤 했었다. 용기 있는 아가씨의 취미는 독서와 약초 모으기였다. 괴짜이긴 하나 훌륭한 치료사인 앙겔라는 마을 사람들이 꺼리는 동시에 찾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녀의 외삼촌인 레예스는 그녀가 밤에 숲에 가는 것뿐이 아니라 결혼 적령기임에도 타인은 거들떠보지도 않는 것 외에도 걱정거리가 태산이었다. 본인은 그 어느 것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지만. 평소와 같이 약초를 캐러 숲으로 들어간 앙겔라는 해가 지는지 도 모르고 숲을 쏘다니다 덫에 걸렸다 풀려난 동물을 발견했다. 몸집이 엄청나게 큰 짐승이었다. 그냥 두고 갈 수 없었던 앙겔라는 결국 오늘 캔 약초를 짐승의 발목에 대고 자신의 치맛자락을 찢어 붕대처럼 말아주었다.
[있잖아, 일단 도와주기는 하는데 은혜는 갚을 수 있니?]
[…….]
[한낱 짐승한테 말하는 것도 웃기지만…. 다음에 만나면 나는 살려주렴.]
앙겔라는 그대로 집으로 돌아왔고, 그녀를 기다리다 밤을 지새운 레예스한테 잔뜩 혼이 났다. 그녀는 침대에 누워 짐승의 털 감촉이 생각나는 손을 바라보았다. 은혜를 갚으라고 장난처럼 말했지만 어쩐지 지성이 있어 보이는 짐승이라 정말로 그럴지도 모를 거라 생각하며 앙겔라는 잠에 빠졌다.
*
앙겔라는 평소와 다른 고급스러운 아침을 먹으며 생각했다. 이곳은 자신의 집이 아니며 레예스도 있지 않다. 짐승을 만난 다음 날 약초를 찾으러 간 레예스가 실종이 되어버렸고, 그를 찾으러 나간 앙겔라는 아무도 발을 들이지 못한다는 성에 갇혀있는 그를 발견했다. 그 성의 주인은 다름 아닌 괴물 성주였다. 허락되지 않은 자가 오면 사형이라고 말하는 괴물 성주의 발목에 감겨있는 치맛자락을 발견한 앙겔라는 그에게 거래를 제안했다. 목숨을 한 번 구해주는 은혜를 자신에게 말고 레예스에게 돌려주라고. 앙겔라는 자처해서 성에 남기로 했고 성주는 불쾌해하긴 했지만, 그녀의 바램을 들어주었다. 그리고 지금, 앙겔라는 호화로운 아침을 먹으며 생각을 정리했다. 주어진일도 없고 레예스도, 마을 사람도 없었다. 앙겔라는 아무것도 할 일이 없어서인지 레예스나 진료를 끝마치지 못한 사람들이 자꾸 생각나 초조했다. 그녀는 무작정 침실을 나서 산책을 나섰다. 한참이나 길을 잃은 후에 발견한 도서관. 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오고 햇볕이 나른하게 쬐고 있는 창가 자리는 앙겔라를 행복하게 만들었다. 책을 사랑하는 앙겔라에게 있어서 성주의 도서관은 그야말로 천국이었다. 그녀의 일상이 그 렇게 정해졌다. 아침을 먹고, 산책한 후에 도서관에서 하루종일 책을 읽는다. 처음 며칠은 행복했다. 하지만 크고 조용한 식당에서 혼자 먹는 음식에 지쳐가는 것은 금방이었다. 레예스와 빵 한 조각과 스프를 나누어 먹고, 따뜻한 차를 마시며 소소한 잡담을 나눴던 것이 그리워졌다. 앙겔라는 흘러나오는 눈물을 훔치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
평소와 다른 곳으로 산책하러 갔던 것이 화근이었다. 처음 보는 화려한 문에 이끌려 방으로 들어간 앙겔라는 빈방 가운데 있는 아름다운 장미꽃에 시선을 빼앗겼다. 조금씩 꽃잎이 떨어지고 있는 장미는 유리병 안에 소중히 담겨있었다. 흙도 없이 테이블에 서 있는 모습이 신기해 다가가 유리병을 잡으려던 앙겔라는 어디선가 나타난 짐승에 의해 내팽개쳐졌다. 앙겔라는 자신을 벽에 찍어누르고 송곳니를 드러내며 위협적으로 자신에게 으르렁거리고 짐승에게서 벗어날 수 없었다. 앙겔라는 침을 삼키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미안…. 해요.]
[크르르, 후욱, 후욱.]
[들어오면 안 되는 곳인지 몰랐어요. 미안해요.]
짐승은 위협적이게 내보이던 송곳니를 집어넣고는 앙겔라를 놓아주었다. 그녀는 날카로운 손톱에 긁힌 팔에서 흐르는 피를 지혈하며 그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다친사람임에도 불구하고 도망가지도 않고 눈을 똑바로 바라보는 그녀의 모습에 놀란 눈치를 하던 짐승은 인상을 찡그렸다. 앙겔라는 그 눈을 보고는 고개를 저었다.
[괜찮아요. 많이 다친건 아니에요.]
[…다쳤으면 가서 치료를 받으십시오. 그리고 다시는 이 방에 들어오지 마십시오!]
짐승은 그대로 자리를 떴다. 성에는 의사가 없었지만, 다행히 의사 본인이 있었기 때문에 걱정 없이 치료했다. 앙겔라는 다친 팔을 문지르며 자신을 바라보던 그 눈동자를 생각했다. 걱정인지, 죄책감인지 알 수 없는 이상한 눈이었다.
*
앙겔라는 조금 피곤한 감에 아침도 먹지 않고 바로 도서관으로 향했다. 어제의 그 눈빛이 자꾸만 생각나 책의 내용이 전혀 머릿속에 들어오지 않았다. 한숨을 푹 쉬며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고 있는데 눈앞에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상처는…. 괜찮으십니까.]
[네 괜찮아요. 그리 깊은 상처는 아니었는걸요.]
[그 장미.]
[네?]
[그 장미는 제게 정말 중요한 물건입니다.]
갑자기 그런 것을 왜 말해주나 싶었지만, 어제의 눈빛을 생각하니 죄책감이 아닐까 싶었다. 어제의 짐승이라고는 믿기지 않을 만큼 무섭지 않았다. 옷 밖으로 삐져나오는 검은 털은 얼굴을 파묻고 싶을 정도로 부드러워 보였고 어제의 으르렁거린 소리와 다르게 차분하고 아름다운 목소리였다. 잘못한 강아지처럼 축 처진 귀와 꼬리가 너무나도 귀여웠다. 머뭇거리며 시작한 이야기는 이러했다. 어떠한 저주에 걸린 성주는 짐승의 모습이 되어버렸고, 그와 동시에 마법의 장미가 나타났다고. 혹시 저주를 풀 방법이 아닐까 싶어 장미를 소중히 보관했고, 장미가 말하길 사랑하는 사람이 나타나면 저주가 풀린다고 했지만, 괴물을 사랑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에 지금껏 보관하고 있다고 말했다. 중요한 물건이라 신경이 날카로워졌다고 사과했다. 사과와 같이 혹시 필요한 물건이 없냐고 물었다. 앙겔라는 빙긋 웃으며 햇빛에 빛나고 있는 검은 눈동자를 바라보았다.
[저와 함께 식사를 하시면 어떨까요?]
[식사요?]
[혼자 먹는건 조금 외롭거든요. 함께 식사라도 어떠세요?]
[…알겠습니다.]
앙겔라는 자리에서 일어서 손을 뻗어 그녀의 팔에 올렸다. 움찔거리는 몸이 손 끝에 고스란히 느껴졌다.
[전 앙겔라 치글러에요. 당신의 이름은 뭔가요?]
그녀는 선뜻 대답하지 않았다. 손끝에 닿는 털은 확실히 부드러웠다. 어째서 대답을 하지 않는지는 알 수 없으나 앙겔라는 그녀의 눈을 빤히 보며 기다렸다. 눈을 마주치는 것이 익숙지 않은 것인지 그녀는 황급히 고개를 숙였다.
[제 이름은 파리하 아마리입니다.]
[갈까요, 파리하. 같이 식사해요.]
앙겔라를 따라나선 파리하는 자신을 이끄는 그녀의 모습에 눈길을 사로잡혔다. 자신을 보고도 기겁하며 놀라지 않는 여성은 처음이었다.자신을 똑바로 바라보는 푸른 눈동자는 아름다웠다. 다른 남자 인간을 잡아 왔을 때는 죽일 생각은 없었다. 그저 자신의 모습에 대해 떠벌리지 않기를 원했기 때문에 적당한 협박 후에 그를 놓아줄 생각이었다. 하지만 그 전날에 만난 당돌한 앙겔라는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는 무서운 소문이 돌아다니는 짐승에게 은혜를 갚으라 떼를 썼다. 이 어찌나 이상한 여성인지. 둘 다 놓아줄 생각은 없었지만, 앙겔라 만큼은 잠깐이나마 잡아두고 싶었다. 자신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 여성이라면, 혹시, 혹시나 저주를 풀어줄 수 있는 사람이 될지도 모른다는 희망 때문이었다. 하지만 인간과 대화한 것이 워낙 오래되었고, 억지로 잡혀있는 앙겔라를 도대체 어떻게 대하면 좋을지 전혀 알 수가 없었다. 할 수 있는 것이라곤 그녀를 몰래 따라다니는 것뿐이었다. 도서관에 쓸쓸히 홀로 앉아 있는 모습을 보자니 마을로 돌아가게 하고 싶었지만 동시에 그녀가 없어지면 다시는 아무도 만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장미의 방에서 앙겔라를 발견한 후, 그녀를 다치게 했을 때는 죄책감에 죽고만 싶었다. 앙겔라는 다친 장본인임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파리하를 더 위해주었다. 그다음 날이 되어서야 파리하는 용기를 내서 그녀에게 다가갔다. 혹시 어제의 일 때문에 피하지 않을까 걱정했지만, 오히려 반대였다. 앙겔라는 더욱 파리하에게 다가왔다. 놓아달라고 하면 놓아줄 생각이었는데 오히려 함께 식사하자고 제안을 하다니. 이 어찌나 대단한 사람인지. 파리하는 자신의 앞에서 걷고 있는 앙겔라 치글러라는 이 용감하고 아름다운 사람에게 조금 더 가까워지고 싶어졌다. 그리고 그녀를 더욱 놓아주기가 싫어졌다.
*
앙겔라는 아침을 먹는 것으로 시작으로 관계를 조금씩 진전시키고 있었다. 처음 함께 아침을 먹은 날은 커다란 테이블의 끝자락에 앉아 눈도 마주치지 않고 밥을 먹었다. 날것의 고기를 씹어먹는 그녀는 인간의 목소리와 짐승이 목소리가 동시에 새어 나오곤 했다. 아침을 같이 먹자고 권한 것이 조금 후회가 되었다. 하지만 다행이도 시간이 흐를 때마다 앙겔라는 개와 함께 테이블에 앉아 밥을 먹는 느낌으로 익숙해졌다. 앙겔라는 조금씩, 조금씩 자리를 옮겨 그녀의 바로 옆자리로 옮겼다. 파리하도 그녀가 다가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내버려 두었다. 신경이 쓰이지만, 자신을 피하지 않는 그녀와 가까워지는 것이 싫지 않았다. 오히려 좋았다. 둘의 사이는 빠르게 가까워졌다. 무뚝뚝하지만 신사적인 파리하와 다정하고 부드러운 앙겔라는 놀라우리만치 잘 어울렸다. 식사로 시작된 둘의 시간은 다른 곳에서도 함께했다. 함께 도서관에 간다든지, 눈이 오는 정원에서 서로에게 눈덩이를 던지며 같은 시간을 보냈다. 더욱 오랜 시간을 함께할 때마다 파리하는 죄책감이 들었다. 자신이 붙잡아두면 안되는 사람을 붙잡고 있는 것이 아닌지. 파리하에게 있어서 앙겔라는 태양과 같았다. 밝고 아름답지만 자신 같은 괴물이 가까이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했다. 같이 지내는 시간은 행복했 지만, 자신만을 위해 앙겔라를 희생시키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아주 차가운 겨울밤, 파리하와 앙겔라는 난롯가의 앞에 앉아 있었다. 보드라운 털을 좋아한다는 앙겔라는 파리하의 꼬리를 붙잡고 푹신한 쿠션에 둘러싸여 가만히 온기를 느끼고 있었다.
[앙겔라, 돌아가고 싶습니까?]
[음, 글쎄요.]
[그 레예스라는 남자가 그립지는 않으십니까?]
[그립지 않다고 하면 거짓말이겠지만 괜찮아요. 파리하가 편지도 쓰게 해줘서 제가 안전하다는 걸 알고 있을 테니까요. 그리고 무엇보다 그는 제가 행복하길 바라는 사람이라서.]
파리하는 그녀에게 행복하냐고 물으려다 입을 다물었다. 이런 괴물과 함께 있는 것이 행복하냐고 묻는 것은 말도 안 되는 일이지. 파리하는 자신의 옆에 바짝 붙어 졸고있는 앙겔라를 품에 안아 들었다. 앙겔라는 따뜻한 품과 부드러운 털에 기분이 좋은지 더욱 파고들었다. 그녀를 놓아주어야 한다. 어차피 자신은 마지막까지 괴물로 죽을 것이다. 남아있는 시간은 얼마 없었고, 자신의 마지막 행복을 위해 그녀를 희생시키고 싶지 않았다. 사랑까지는 아니어도 친구가 된 것 같았는데, 자신이 죽는 모습을 보면 그녀가 슬퍼하겠지. 파리하는 완전히 잠들어버린 앙겔라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 파리하는 그녀를 안아 들고 성 밖에서 기다리고 있는 레예스의 품에 그녀를 건네주었다.
[잘 부탁합니다.]
[정말 후회하지 않으시겠습니까?]
[예. 저는 앙겔라의 곁에 있어서는 안 되는 괴물입니다. 그녀는 제 곁보다 마을에 있을 때가 더 행복할 겁니다.]
레예스는 그렇게 앙겔라를 데리고 떠났다. 파리하는 앙겔라의 모습이 보이지 않을 때 까지 추운 겨울밤에 가만히 서서는 기다리고 또 기다렸다.
*
허리가 배기는 침대에서 일어난 앙겔라는 눈앞에 보이는 레예스의 모습에 놀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레예스는 침착하게 그녀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했지만, 앙겔라는 믿을 수가 없었다. 그녀가 알고 있는 파리하라면 절대 그럴 리가 없으니까. 그녀는 바로 옷을 챙겨들었다. 레예스는 앙겔라의 성격을 알고 있기에 행복하기만 하면 된다는 말과 함께 손을 들고 그녀를 보내주었다. 그녀는 숲을 마구잡이로 해치며 달렸다. 파리하는 아마 알지 못할 것이다. 아무도 그녀를 사랑하지 않기 때문에 저주가 풀리지 않을 거라는 건 앙겔라가 단지 이야기를 하지 않아서 일 뿐이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짐승, 괴물의 모습이건 상관없었다. 그건 단지 겉모습일 뿐이었다. 파리하는 사려가 깊고 심성이 착한 사람이다. 겉모습에 두려워 하고있는 것은 파리하 자신이었다. 앙겔라는 겉모습이 아닌 파리하의 내면을 알기 때문에 더더욱 다가간 것이다. 파리하아 자신을 원하지 않는다는건 순 거짓말이다. 매일 밤 장미의 방에서 떨어지는 꽃잎을 향해 하염없이 조금만 더 시간을 달라고 말하는 그녀의 모습을 본 후에 깨달았다. 장미는 그녀의 목숨이라는걸. 완전히 져버리고 이제는 마지막 꽃잎도 떨어지기 전까지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지 못하면 그녀는 죽어버리고 만다. 자신의 모습에 두려워 사랑하지 못하는 파리하를 그냥 둘 수 있겠는가. 앙겔라는 숲에서 넘어지고 옷이 찢어져도 멈추지 않고 달렸다. 그녀는 성에 도착하자마자 장미의 방으로 뛰어들어갔다. 꽃잎이 다 져버린 유리병을 소중히 안고 바닥에 누워있는 파리하의 모습. 심장이 덜컹 떨어지는 기분이었다. 앙겔라는 그녀에게 다가가 몸을 뒤집었다. 조용히 눈을 감고 있는 모습에 눈물이 쏟아져 내렸다.
[파리하. 파리하. 일어나봐요.]
[…….]
[말할게 있어요.]
[…….]
[겉모습 따위 상관없어요. 저는 당신이 괴물이라 불리던, 짐승이라 불리던 상관없다구요. 사람들이 당신을 두려워한다고 말했지만, 사실은 당신이 제일 두려워했었죠? 괴물이 된 모습을 사랑해줄 사람이 누가 있을까 하고.]
앙겔라는 파리하의 몸을 끌어안았다. 여전히 부드러운 털이었지만 온기가 느껴지지 않았다. 그녀의 품 안에 있는 장미 따위에 파리하가 목숨을 잃은 것만 같아 유리병을 집어서는 벽에 던졌다.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산산조각이 났다.
[여기 있어요. 당신을 사랑해주는 사람이. 그러니까 이딴 저주에 지지 말고 일어나봐요. 저는 당신을 사랑해요.]
어둠이 내려앉은 방에 환한 빛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조각이 난 유리병과 섞인 꽃잎들이 빛을 내며 공중으로 떠오르기 시작하더니 앙겔라의 품 안에 있던 파리하를 감싸기 시작했다. 혹시 이대로 그녀를 데려가는 것이 아닌가 겁이 난 앙겔라가 파리하의 손을 꼭 잡았다. 눈 앞을 가리는 강렬한 빛과 함께 손끝에 느껴지던 털의 감촉이 사라지고 인간의 피부가 느껴졌다. 앙겔라의 눈앞에 서 있는 여성. 검은 머리와 검은 눈동자를 가지고 있는 아름다운 여성이 앙겔라의 양손을 소중히 잡고 있었다.
[앙겔라.]
[파, 파리하?]
[네 앙겔라. 접니다.]
[정말 파리하에요?]
파리하는 앙겔라의 앞에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았다. 눈물이 잔뜩 맺힌 눈동자는 여전히 자신을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파리하는 그녀의 눈가에 입을 맞추었다. 짠기가 느껴지는 눈물이 입술을 적셨다. 살짝 놀란 앙겔라가 몸을 움츠리자 파리하는 그녀를 껴안으며 앙겔라의 선홍빛의 입술에 입을 맞췄다.
[당신의 말이 맞습니다. 저는 그 누구보다도 저 자신을 괴물이라 생각했어요. 아무도 저를 사랑해주지 않을 거라고 단정 지었습니다. 앙겔라, 이런 저를 사랑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저도 당신을 사랑하고 있습니다.]
*
언제부터 생겼는지는 알 수 없지만, 마을에는 소문이 하나 새로 생겼다. 괴물 성주는 사실 저주에 걸린 멋진 성주였고, 그녀의 저주를 푼 여성과 함께 성에서 행복하게 지내고 있다는 소문이.